
OFF THE RECORD #3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너무나 다정해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
— 임강성, 이선우 배우 인터뷰
2026년 6월 26일 ∙ 시티 에디터

사진 제공 : 오차드뮤지컬컴퍼니
어두운 장롱. 두 아이가 숨죽이고 있다. 한 아이가 손으로 다른 아이의 눈을 가린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내밀한 기억. 폭풍처럼 몰아치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이 장면은 유독 고요하다. 그 장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두 사람, 이반 역의 임강성 배우와 알료샤 역의 이선우 배우를 만났다. 벌써 세 작품을 연이어서 하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인터뷰 자리가 오히려 제일 어색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우
아직 대학로에서 작품을 많이 하지는 않아서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동료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는 하는데, 강성이 형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사람 중 하나예요. 눈만 봐도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알 것 같은 사이라고나 할까요.
강성
선우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친구예요. 이전 작품에서도 친동생 역할로 나왔고. 사적으로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 친구고. 저희 둘이 닮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기도 해요. 이런 점들이 시너지를 내서 그런 건지 선우랑 무대에 설 때 유독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지금이 제일 어색하네요. (웃음)
현실에서 쌓아온 친밀한 관계는 작품에서 사뭇 다르게 표현된다. 어머니가 같고, 같은 장롱 안의 기억을 나눈 형제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자라면서 다른 선택을 한다. 그렇게 이반과 알료샤의 말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게 된다. 이들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강성
한 단어로 말할 수 있어요, ‘안타까움’. 대사에도 나오는데, 알료샤는 ‘숨이 가볍고 차가운’ 아이예요. 이 연약한 아이가 (자신은 굳은 의지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도피한다는 사실, 어린 시절에 같이 보냈던 시간,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한 상황, 이 모든 게 ‘안타까움’이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것 같아요.
이반은, 어떻게 보면 신이 인간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음에도 이렇게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불만을 가지고 있어요. 그 신에 대한 분노가 알료샤를 보는 시선에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알료샤에게 더 날카롭게 얘기하기는 것이기도 할 거예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에 알료샤의 눈을 볼 때마다 계속 마음 속에서 부딪힘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선우
저도 ‘안타까움’을 느껴요. 그런데 이반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그런 감정을 느껴요. 극 초중반에는 형제들이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뒤에 가서는 형제들의 고통이나 아픔, 후회 같은 것들을 바라보면서요. 알료샤는 형제들의 그런 모습까지도 다 받아들인다고 보거든요.
강성
‘장롱 안에서’ 넘버에서 제가 알료샤에게 회중시계를 건네거든요. 저는 그게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자기에게 있던 것을 툭 떼어서 알료샤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켜주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요. ‘장롱 안에서’ 넘버가 끝나고 알료샤가 일어나 자기만의 길을 갈 때 제 이반은 가장 약해지는 것 같아요. 그냥 무너지는 심정이에요.

사진 제공 : 오차드뮤지컬컴퍼니
극이 진행되면서 알료샤는 점차 달라진다. 장로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으로. 변화는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선우
처음엔 얄료샤가 형제들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알료샤가 제일 불안정한 인물처럼 느껴졌어요. 성스러워 보이지만, 그 내면은 굉장히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알료샤 생각에 가장 진실되어 보이는 드미트리 형은 죽음 앞에서도 사랑하는 여자가 보고 싶다고 울부짖어요. 그러면서 알료샤는 ‘나는 솔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를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도 잊었던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을 거예요. 그 이후로 ‘장롱 안에서’ 넘버에도, ‘헛소리’ 넘버에서도 알료샤는 기도로 안 되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돼요. 그러면서 내면에 금이 가죠.
특히 ‘헛소리’에서 발작을 하게 될 때가 가장 흔들리는 지점인 것 같아요. 신체를 제가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 자체만으로도 감정이 극한으로 치닫아요. 무엇보다 까라마조프가의 피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끼게 되거든요.
‘대심문관 1’에서는 형의 생각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형을 감싸 안아요. 그 전에는 ‘형이 왜 저러지’라는 물음이 있었다면, 그때는 형의 그런 생각들까지도 함께 품어주는 거죠. 형의 아픔이나 상처, 혼자서 괴로워했던 마음들,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그 모두를요.
강성
그런데 저는 그런 알료샤의 팔을 쳐내요. 이반은 그때까지도 알료샤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죠. ‘네가 나를 동정해? 너 솔직하게 생각해봐, 너도 사실은 똑같아’라는 생각을 가지고 알료샤의 마음이 가식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이반에겐 자신만의 논리가 필요하거든요.
선우
사실 제가 표현하는 알료샤는 ‘대심문관 2’에서까지도 마음이 정리된 상태가 아니에요. 오히려 제일 혼란스러운 순간이죠. 법정에서 모든 가족들이 무너져 내려 앉은 상황을 보면서, 왜 인간 세계를 이렇게 그냥 버려두셨는지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그러다가 깨닫게 되죠. 악마는 우리의 내면에 있고, 그 악마를 해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그동안 생겨났던 균열들이 한번에 깨지고, 그 깨달음을 부르짖는 거죠.
사랑했던 것들은 때론 고통이 된다. 까라마조프 형제들에게도 그렇다. 이반은 자신의 헛소리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그 헛소리마저도 이반에겐 고통이었을까. 결국 이 형제들에게 사랑이란 뭘까.
강성
완벽한 논리라고 생각하며 논문을 써내려갔을 테지만 사실 이반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예요. 이 말들이 어쩌면 헛소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 논리를 더 깊이 파고 들다보니 결국은 그 논리들이 자신에게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주지 않았나 싶어요.
어쩌면 이반에게 사랑은 ‘뒤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사랑하고 싶어서 다가가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게 되어서 결국은 뒤틀려 있는 사랑. 꽃이 예뻐서 만지고 싶다고 꺾어버리는 것처럼요. 기본적으로 이반은 절대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인간 임강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웃음)
선우
알료샤는 사랑이 ‘이 세상에 없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이런 감정들도 다 그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해요. ‘나약하다는 건 아직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이 알료샤의 키워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안하고 갈피를 못 잡으니 알료샤가 자칫 약해보일 수도 있죠. 그래도 알료샤는 참고 참아서 어떻게든 사랑으로 품는 사람이에요. 평소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사는데, 알료샤가 그런 인물이어서 저랑 많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사진 제공 : 오차드뮤지컬컴퍼니
대작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을까. 연습 기간 동안 배우들에게는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라는 숙제가 주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무거운 부담감을 배우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선우
원작이 워낙 두껍고 방대한 책이다보니 너무 부담이 되더라고요. 이해가 제대로 안 되는 부분도 많고요. 그런데 대본을 읽어보고 캐릭터를 분석하다보니 원작만을 따라갈 수는 없겠더라고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만이 가진 색깔이 있어서요.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이미 이 작품을 알고 계신 연출님, 작가님, 음악 감독님 등 많은 분들이 엄청나게 도움을 주셨어요. 자료도 준비해 오시고 사소한 질문까지도 모두 다 대답해주셨죠. 전에 알료샤를 했던 형들한테도 많은 질문들을 했고요. 그런 시간 때문에 그나마 부담감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강성
예전에 ⟨블루레인⟩이라는 뮤지컬을 한 적이 있었어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 그때 많은 책들과 자료들을 봤어요. 사실 그때 원작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책과 대본을 접하니까 또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고전이 가진 힘인 것 같아요.
이반이란 인물을 어떻게 그려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연출님이 이끌어주신 연습 방식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대본을 빨리 놓고 직접 인물과 인물이 부딪혀 보면서 그 에너지를 빨리 느껴보자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처음엔 이반이 논리와 이성을 좇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른 인물들을 직접 만나보니, 이반이 무너지는 과정이 더 흥미롭고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글로만 적힌 것들을 현실로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연출님의 작업 방식이 배우의 그런 지점들을 이끌어내 주시는 것 같아요. 정말 매력적인 과정이었죠.
막상 무대 위에 오르고 나니,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많았다고 한다. 여러 번의 입자 테스트를 한 뒤 신중하게 선택한 크기의 코르크 가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점들이 있기도 했다고.
선우
리허설 때 한번은 코르크 가루가 목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백스테이지로 가면서 목에 걸렸다고 하니까, 누가 ‘그럴 땐 삼켜’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진짜 삼켰어요.
강성
그거 나야. 뱉어지지 않으면 삼키는 수밖에 없어. (웃음) 아마 코르크 가루를 안 먹어 본 배우는 없을 거예요. 그 가루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먼지들이 목에 한번 들어가면, 정말 아찔해요. 일부러 그 가루를 꺼내려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어요. 그래도 이반 캐릭터 자체가 소리를 지를 법한 성격이니 다행이죠.
바닥면의 경사는 무대 위 까라마조프가를 더 불안하게 보이게도 한다. 하지만 몸에 부담이 많이 가기도 할 터이다. 무대 위 다른 에피소드들이 궁금해졌다.
강성
저희 네 명이 다 같이 서 있을 때, 저희는 바로 서 있는 것 같은데 앞에서 보면 자꾸 안 맞대요. 그래서 저희가 좀 비스듬한 자세를 취하니까 그때서야 앞에서 보기에 똑바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뛰어나가서 딱 서야 되는데, 브레이크가 안 걸려서 바닥 조명 바로 앞까지 간 경우도 있고요.
사실 저는 알료샤가 좀 안됐어요. 이반은 주머니에 손도 넣고, 몸도 살짝 삐딱하게 움직이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알료샤들은 정자세로 서 있을 때가 많고, 무릎 꿇고 기도도 해야 한단 말이죠. 오로지 코어로만 버텨야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거예요.
선우
그런 경사 무대에서 저희들은 막 뛰어다니고 서로를 던지죠. 좀 격한 장면들도 많다보니까, 던지는 배우들이 조금만 힘 조절을 못해도 던져지는 배우들은 관객석까지 날라가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웃음)
강성
극 중에서 이반이 염할 때 쓰기 위해서 흰색의 긴 천을 표도르의 손목, 발목에 묶어요. 그런데 이게 극 후반쯤 되면 물에 젖어서 거의 채찍처럼 변해요. 표도르 형님들이 노래를 하고 술병을 딱 내려놓고 로브를 펄럭이면서 굉장히 멋있게 나가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때 그 채찍처럼 변한 천에 이반들이 종종 맞아요. 처음 맞았을 때 정말 너무 아픈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그 다음부턴 그 장면이 될 때마다 긴장이 되죠. ‘쫄지 않아, 쫄지 않아’ 라고 속으로 계속 말하면서 포커 페이스를 지켜내려고 하고 있어요.
가끔은 무지개도 봐요. 흰 천이 펄럭이면서 조명 빛에 물방울들이 쫙 펴지거든요. 이반의 시선에선 그게 정면으로 보이죠. 이반으로서 격정적인 씬들을 끝내고 그 무지개를 보면, ‘무지개다!’ 하고 멍하니 바라보게 돼요.

사진 제공 : 오차드뮤지컬컴퍼니
시각적인 만족감을 위해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는 생화 장미가 사용된다. 제작진은 전국에서 장미를 공수하는 데 이어, 심지어 오차드뮤지컬컴퍼니 사무실 한켠에서 장미를 직접 키워내 공연장으로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한 주에 90송이에 가까운 장미들이 이곳에서 제작진의 보살핌을 받다가, 무대 위로 옮겨진다.
강성
장미는 책에 나오지는 않아요. 그런데 우리 극에서는 이 붉은색 장미가 피를 의미하기도 하고, 욕망을 의미하기도 하면서 계속 사용되죠. 장미가 흩어지고, 찢어지고, 흩뿌려지면서 의미하게 되는 것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이렇게 책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뮤지컬에서는 시각적으로 펼쳐져요. 예를 들어, 천장에서 내려 오는 구조물도 악마의 날개를 의미할 수도 있고, 이반의 믿음이 무너지는 상징으로 사용될 수도 있죠. 형제들의 움직임은 때론 악마처럼 실체화되기도 합니다. 그런 재미 요소들을 즐겨주셨으면 해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다섯 번째 시즌이 시작된 지 두 달 정도 지났다.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에 임하고 있을까. 계속해서 이 작품이 사랑받게 되는 이유는 뭘까.
선우
저는 이 공연이 모든 인간이 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사건이나 감정들을 다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드미트리의 마음, 이반의 생각, 알료샤의 태도, 스메르쟈코프의 선택,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각 인물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알료샤들끼리는 캐릭터를 너무 성스럽지만은 않게 표현하자고 얘기를 많이 했어요. 알료샤가 단지 성스럽기만 한 인물은 아니니까요. 따지고 보면 아직 완벽하게 성직자가 된 것도 아니고요. 내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그 불안한 감정을 끝까지 가지고 가보려고 해요.
강성
집에 가서 공연을 복기할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저 스스로에게 너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연민을 많이 받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슬픔에 잠식되어 버리면 초반과 후반의 완전히 다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거예요. 노선을 정해놓고 가는 연기가 되버리면 재미없잖아요.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가지고 연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인간의 양면성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보고 싶어하지만 보기 싫어하기도 하고, 들키고 싶지 않지만 사실은 들키고 싶기도 한 마음들. 그런데 과연 정말로 들키고 싶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날 좀 봐달라고 오히려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 입체적인 생각들을 하게 하는 극을, 또 여러 배우들이 각자의 색깔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많이들 보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반과 알로샤는 서로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남겼다.